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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에세이] 사회적 거리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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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민정용 작성일20-03-06 11:43 조회4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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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석 < 자본시장연구원장 yspark@kcmi.re.kr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 수가 가파르게 늘고 있다. 정부는 전염병 대응전략을 감염증 확산 방지에서 벗어나 사망자 등 인명피해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전환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국민들에게는 개인 위생수칙을 지키고 ‘사회적 거리두기(social distancing)’ 실천을 당부했다. 우리 연구원도 이에 호응하기 위해 지난주 수요일부터 재택근무를 시행하고 있다. 연구원은 보고서 발간이나 세미나 개최 등을 통해 연구 결과를 사회와 공유하는 일을 하는 조직이라 재택근무가 가능하다.

오래된 책 냄새가 나지 않는 공간에서는 글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나쁜 버릇이 있다. 한경에세이 첫 번째 원고를 쓰기 위해 재택근무 중에도 불구, 일상과 같은 시간에 연구원에 출근했다. 평소보다 조용한 원장실에서 컴퓨터를 켜고 커피를 한 모금 마시니 방주인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서강대 내 연구실에 앉아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대학에서 20여 년간 경영학을 가르치다 잠시 연구원 원장으로 일하게 돼 지금은 학교를 휴직 중이다.

나의 대학 동기들은 대부분 졸업 후 기업에서 일하는 것을 택했다. 임원급까지 올라간 친구들은 성실하다는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한국 기업 현실에서는 성실한 것만으로 임원 진급이 보장되지 않는다. 그들은 내가 부러워하는 높은 사회성도 갖추고 있다. 기업에서 임원이 되기 위해서는 ‘사회적 거리두기’의 정반대인 ‘사회적 거리 좁히기’가 몸에 배어야 한다. 밤낮없이 많은 사람을 만나면서 인적 네트워크를 넓히는 일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임원으로 일하는 기간을 늘릴 수 있다. 사회성이 부족한 나는 기업보다는 학교가 적성에 맞았다.

강의시간을 제외한 일과시간의 대부분을 연구실에서 홀로 보냈다.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권장되는 ‘혼밥’도 나에겐 익숙한 일이다. 최근 코로나바이러스 감염 방지 대책으로 출퇴근 시간 유연제와 재택근무가 새롭게 시작되고 있다. 이것 또한 내가 교수로서 오랫동안 해온 생활이다. 나는 사회적 거리두기를 이미 해온 셈이다.

사회적 거리두기에 익숙한 나도 퇴근 후 친구들과 생맥주를 앞에 두고 편안한 대화를 하고 싶고, 주말이면 가족들과 맛집도 찾아다니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다. 사회적 거리두기에 익숙하지 않은 많은 사람은 요즘 얼마나 답답하고 힘들지 알 만하다. 생업을 위협받고 있는 자영업자들의 고통을 생각하면 코로나19 사태가 하루빨리 종식돼 우리 모두가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는 날이 오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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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 승승장구하다 사업장 자연보호구역으로 지정 돼 정리… 경력직 입사해 밤새워 일하며 실적 쌓아장요나 선교사(왼쪽)가 1971년 2월 한영기업 대표이사 시절 직원들과 함께 찍은 사진.

아내와의 신혼은 깨가 쏟아지거나 알콩달콩하진 않았다. 대신 안온하고 평탄했다. 우리 집 분위기가 180도로 달라진 건 아이들이 태어난 후부터였다. 결혼하고 곧 첫아들 훈이가 태어나고 10개월 후에 둘째 아들 지훈이가 연년생으로 태어났다. 첫아들을 품에 안았을 때는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다. 둘째 아들이 태어나자 더 바랄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토록 가족을 갈망했는데 내게 진짜 가족이 생겼으니 말이다.

결혼과 함께 나는 사업을 시작했다. 사업을 하고 싶어 항상 사업 아이템을 구상했는데 마침 베트남에서 기막힌 아이템을 발견했다. 달걀 보관 용기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에서는 달걀을 지푸라기에 엮어서 팔았다. 그걸 들고 오다 보면 아무리 조심해도 한두 개는 깨지기 마련이었다.

그런데 베트남에는 달걀 보관 용기가 따로 있었다. 그걸 보자 한국에서 직접 만들어 팔아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달걀 보관 용기를 붙들고 씨름했다. 다양한 재질로 판을 짜고, 모양새를 만들었다. 그리고 여러 달 만에 달걀 보관 용기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특허도 받았다. 다른 아이템도 눈에 들어왔다. 자연석을 팔면 돈이 될 것 같았다. 그래서 허가를 받아 강원도 철원에서 자연석과 정원석을 채취해 일본에 수출하는 무역을 했다. 역시 대성공이었다.

하지만 예기치 않은 일이 생겼다. 박정희 대통령이 1977년 9월 자연보호운동을 천명했는데 철원도 자연보호구역으로 지정돼 사업을 이어갈 수 없게 됐다. 결국 사업을 정리하고 벽산그룹에 들어갔다. 경력을 인정받아 벽산의 계열사인 대한종합식품의 판매촉진 과장대리로 회사 생활을 시작했다.

나는 대학원에 들어간다는 각오로 입사했다. 중역들은 교수고 업무는 내게 주어진 일종의 미션이라 생각했다. 남들이 퇴근하면 그때부터 넥타이를 풀고 웃통을 벗어젖힌 후 시원한 맥주를 들이켜며 일을 시작했다. 나의 첫 미션은 통조림 판매량을 올리는 것이었다. 광고나 통계를 보면서 아이디어를 짜내고 화장실에 갈 때도 혹시 생각이 날까 싶어 메모지를 들고 갔다.

첫 번째로 회사에 제안한 것은 수당 제도의 도입이었다. 판매 실적이 좋은 회사는 대부분 판매에 따른 수당이 있었다. 우리 회사 영업부 사원은 월급제였다. 차량을 운전해 대형 매장에 상품을 배달해주는 게 주업무였다. 잘 팔리지 않는 상품에 대한 판촉도 하고 리어카를 제작해 중소형 매장도 배달하며 영업하도록 했다. 판매 실적에 따라 수당을 지급했다.

그렇게 하나씩 문제를 해결해 가면서 일하는 재미를 제대로 맛보았다. 날마다 밤을 밝혀 새로운 아이템을 연구했다. 승진도 남들보다 빨랐다. 그러다 획기적인 일이 발생했다. 계열사 부장에서 갑자기 그룹 기획실장으로 발탁된 것이었다. 김인득 회장님의 직접 지시라 누구도 토를 달 수 없는 파격 인사였다. 회장님은 내가 밤늦게까지 일하는 걸 몇 번 목격하고 경비 직원에게 나에 관해 물으셨던 모양이다. 그때부터 내 진짜 수업이 시작됐다.

정리=김아영 기자 singforyo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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